총수 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실효성을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는 상장사 비율(29.4%)이 전년 대비 6.3% 늘었다.
조사는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 집단) 92개 가운데 86개 집단의 2994개 소속회사를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1인당 평균 1.6개 미등기임원 직위를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54.4%)이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 몰렸다.
총수일가의 미등기임원 겸직 수가 가장 많은 집단은 중흥건설이다. 정창선 회장이 10곳, 정원주 부회장 등 오너 2·3세 2명도 12곳의 계열사에서 미등기 상태로 겸직하고 있다.
중흥건설은 지난 6월 공정위로부터 사익편취·부당지원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18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미등기임원은 경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법적 책임과 의무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인데, 대기업 집단들이 미등기임원이라는 허점을 이용하면 개정 법의 실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비율이 상당하고 이에 따른 권한과 책임간의 괴리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감시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권한을 남용하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